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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군유허비각(班城君遺墟碑閣)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봉소리 298번지 (군위재실)

배향인물 :  반성군 사미(班城君 斯美/7世)

배향일시 : 양력 11월 첫일요일

건립시기 : 1989년 3월

건립자 : 교리공파종중



종1품 숭록대부 반성군(班城君) 휘 사미(斯美)께서는 교리공파 파조 휘 고의 부로 고려후기 계사생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생졸미상이시다. 고려조에서 성균생원, 좌우위보승별장을 지내시고 말년(1390년경)에 고향 반성으로 돌아와 진성감무를 역임하셨다. 쌍성전투(1356년)에 대호군 최영장군과 함께 보승별장으로 참여하여 쌍성회복공로로 종1품 숭록대부 반성군(班城君)에 봉군 되었다. 당시 전장의 노장수들을 감무에 임하는 제도(1390년)가 있어, 보승별장 이후 노년에 고향의 진주목에서 진성감무에 임하신 것으로 본다.

<세종지리지>에  진주목  반성현에 옥씨가 토성으로 기록이 있고,  사미조의 준호구에 부모는 갑오년(1354년)에 진주목 반성현 남산리5에 세거 한 기록이 있다.  부는 제술업복응재생 옥안덕(玉安德)으로 나이는 72세이고(1283년생) 조는 윤명하대정으로 옥전백(玉全伯)이고, 증조는 호장정조 옥성(玉成)이니 본관은 의령이고, 처부는 사순위랑장동정 남혁(南奕)인데 그의 부는 호장 남군보(南君甫)이고 조는 호장인 남태산(南太山)이며 증조는 남국미(南國美)로 본관은 의령이다. 족보에 나오는 김해 남산리는 지금의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가 그곳으로 보여진다. 아쉽게도 선조의 산소는 실전하였다. 선조가 진주(반성현)에서 돌아가신후 응계조가 어린시절 어머니와 군위 양곡(군위군 군위읍 내량리)으로 이주하셨고,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주성을 침략하기 위해 반성현에 주둔 할 때 반성현은 완전 소멸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반성의 종중 역사도 함께 소실 된듯하다. 산소실전으로 인해 군위군 소보면 봉소리 298번지에 반성군유허비각을 세워 향사하고 있다. 군위군 봉소리 일대에 선산과 위토가 누대에 걸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반성군 유허비각 정면
유허비 음기(후면 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