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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玉氏는 천오백년의 역사를 가진 훌륭한 종족입니다”

의령옥씨 홈페이지를 찾아주신 방문객들께 대종회장 옥치남 인사드립니다.
저는 천사가 푸른바다에 치맛자락을 살포시 펼치고 있는 듯 아름답다하여 상군(裳郡)이라 불려진 거제도에서 별시위공파 23세손으로 태어나 1963년부터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57년간을 살아온 토목기술자로 2019년 1월 1일부터 제16대 의령 옥씨 대종회의 막중한 책무를 맡게 된 옥치남입니다.

의령 옥씨의 시조이신 문혜공 휘 진서(諱 眞瑞)께서는 이 땅의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중국 당나라에서 파견된 정관팔학사 중 한분이시며, 이때가 서기 635년(唐貞觀9年乙未)1) 또는 서기 643년(고구려 28대 보장왕2년)2)으로 지금으로부터 1,380여 년 전이 됩니다.

시조께서는 고구려와 신라 조에 걸쳐 젊은이들에게 시서예악. 군충. 수기. 치인(詩書禮樂. 君忠. 修己. 治人)의 도와 미풍양속(美風良俗)의 순치교화(馴致敎化)를 이끌어 그 영향이 전국에 미치므로 신라조에서 그 공을 높이 여겨 의춘(宜春/지금의 의령) 땅을 식읍(食邑)³ 으로 내리시고 의춘군(宜春君)에 봉하셨으며 돌아가신 후에 문혜(文惠)의 시호(諡號)를 내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문혜공 휘 진서(文惠公 諱 眞瑞)는 의령 옥씨의 시조가 되는 것이며, 시조께서 의령 땅을 식읍으로 받아 만년을 살면서 후손을 번성케 하였으므로 의령(宜寧)을 우리 玉씨의 본관(本)으로 하는 것입니다. 중시조 휘 은종 이후 8대조에 이르러 6개 파(별시위공파. 감사공파. 학생공파. 교리공파. 학사공파. 평장사공파)로 나누어 졌으므로 한반도내 모든 옥씨 성을 가진 분들은 「의령 옥씨」 단일 본인 것입니다.

저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옥씨는 고려가 망하자 살려고 王자에 점을 찍어 玉씨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렇다면 옥보고는 누구인가? 이 의문을 오랫동안 갖고 왔었습니다.  옥씨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옥씨가 탄생되었다면 그들은 모두 왕씨임이 명확할 진데 바보가 아니라면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확인되지 않은 헛소문을 사실인양 설명해준 샌생님 때문에 대종회장직을 맡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기에는 의령 땅을 중심으로 살았으나 종족이 점차 늘어나고 전란 등으로 인한 이산과 산업의 발달과 생업에 따른 세거지 확산 등으로 한반도 전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전국 각 지에 흩어져 사는 우리 종족이 2만 5천 여 명에 달합니다. 또한 우리 종족의 구심점이 되는 종족의 성지는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에 있는 의춘사(宜春祠/구 경모재(景慕齋))입니다.

경모재는 7세조인 정은공(正隱公) 휘 사온(諱 斯溫)과 정은공의 장남인 별시위공(別侍衛公) 휘 호(諱 浩). 정은공의 손자인 현감공(縣監公) 휘 화(諱 華)의 세분의 향사를 모시기 위하여 1920년에 건립한 재실입니다.  경모재 건립 후 전국에서 매년 정은공의 후손(별시위공파. 감사공파. 학생공파) 들이 모여 향사를 모셔 왔습니다. 1968년에 경모재의 경내에 시조 제단비를 건립하면서, 전국의 모든 종친들이 매년 10월 중순에 이곳에 모여 향사를 모시게 되었으며 명실공히 의령 옥씨의 발원지로 구심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모재를 건립한지 100년에 가까워지면서 낡고 노후 되었으며 전국의 각 지구 종회대표들이 모여 종사를 의논할 종무소가 갖추어 지지 않아 대종회의 안정적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에 이르러 경모재 성역화사업에 전국 종친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30여 평의 종무소를 신축하고 외곽 담장의 재 축조와 외각 대문의 설치 등 일련의 정비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시조공을 비롯한 8분 선조의 신위를 모시기 위한 사당(祠堂)의 마련과 기존 건물의 지붕개량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지금까지 비석에 새겨져 야외에 모셔졌던 시조공을 비롯한 선조의 신위도 아늑한 사당 내실에 편안하게 모셨으며, 2017년부터는 14분의 선조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전국 종친들의 화합과 숭조애족의 모든 종사를 이끌고 있는 의령옥씨 대종회는 1920년에 의령옥씨 화수계로 매년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 왔으며 1960년에 전국연합종친회로 편성되었다가 다시 의령옥씨 대종회로 발전하여 체계적인 전국 조직을 갖추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종친 여러분!
우리 의령 옥씨 종족은 어느 종족에 못지않은 훌륭한 선조들을 둔 자랑스럽고 빛나는 종족이라는 긍지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시조 의춘군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신라의 악성이었던 옥보고. 고려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의 한 분이신 정은공, 이조의 청백리였던 응계공, 충신이며 효성이 지극했던 월송공과 청강공, 임진왜란의 선무원종 공신 14분 등 몇 장의 지면을 채우고도 모자랄 충신과 명관과 효자와 열녀가 많은 종족입니다.

특히 21세기 이 땅에 생존하는 의령 옥씨 종친들도 정계, 관계와 법조계 등 각종 분야에서 훌륭하신 분들이 많아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박사를 비롯한 대학교수의 연구직 분야에 종사하는 종친은 타 문중에 비하여 매우 높은 비율일 것입니다.

의령옥씨 종친 여러분!
2023년에는 새로운 임인대동보를 발간 합니다.
먼 훗날 손자가 “할아버지! 옥씨의 시조가 누구예요? 저는 무슨 파예요? 몇 세손이 예요?”라고 묻는 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뿌리를 모르는 종족이 이 사회에서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후손들을 위하여 족보 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의령옥씨대종회장 옥 치 남

1) 의령옥씨 병진보(1976년) 1권, p.1 의령옥씨세보권지1
2) 삼국사기 권 제21. 고구려본기 제9 보장왕 상. 김부식.이강래 옮김, p.416
3) 식읍(食邑): 나라에서 공신에게 내리는 땅으로 조세를 받아 개인이 쓰게 하던 고을